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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그 따스한 인연

당신은 지금 어떤 향기를 내고 있나요?


1. 난곡을 아시나요?

여러분은 '달동네'라고 하면 흔히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높은 언덕길과 계단, 한겨울 연탄을 실어나르는 리어카, 인심 좋은 할머니가 지키는 조그만 구멍가게, 아침마다 전쟁터가 되는 공동화장실, 옹기종기 모여앉은 판자집 등이 우리가 생각하는 달동네의 이미지가 아닐까요? 사실 삶의 터전으로서 달동네라는 곳이 우리 세대에게는 이미 낯선 것이지만요.



올해 '워낭소리'와 함께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입상하며 우리 독립영화의 희망으로 평가받은 영화 중 '똥파리(Breathles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철거촌 용역깡패와 고3여학생이라는 두 이질적인 인물이 서로의 상처를 공유함으로써 삶의 희망을 발견해 나간다는 이야기인데요. 제가'똥파리'를 갑자기 말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과거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로 손꼽혔던 '난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똥파리'를 제작한 양익준 감독은 난곡의 한 단칸방에서 5년 가까이 생활한 경험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혔는데요. 최근 그 난곡이 재개발이 되어 과거 투박하면서도 인정 넘치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합니다. 오늘은 바로 그 난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을 한번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난곡이란 이름은요.


난곡은 지금의 관악구 신림7동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난곡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의 유래가 있는데요. '난초 향기가 그윽한 골짜기'라는 뜻에서 난곡(蘭谷)이 되었다는 설과, '굴러 떨어진 해골'이라는 의미의 '낙골(落骨)'이 난곡으로 변화되었다는 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자의 전원적 감성에 반해 후자는 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마치 재개발로 점철된 도시빈민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동일한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상반되는 유래가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2. 난곡의 어제 - 한강의 기적, 몰려드는 사람들


중고교시절 사회시간에 배운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이루어진 산업화를 통해 우리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재빠르게 탈바꿈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빨랐던 이러한 성장세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데요. 우리 세대들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도 바로 우리 부모님세대가 이룬  '한강의 기적'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blog.ohmynews.com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는 필연적으로 주택부족문제, 환경파괴문제, 도시빈민문제 등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법이죠.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던 난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로 성공의 꿈을 안고 농촌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 그리고
계속된 재개발로 인해 인근의 독산동과 봉천동 등에서 이탈된 2천 5백여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난곡에 차차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들은 어려운 주거환경속에서도 끈끈한 이웃의 정을 이어가며 약 30여년간 생활을 유지해왔는데요. 그러던 지난 2000년, 주거환경 개선을 목표로 재개발사업 및 철거작업이 시행되었습니다. 난곡 주민들은 개발에 합당한 보상과 권익보장을 요구했지만, 철저한 개발논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선 큰 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많은 난곡주민들이 본연의 정든 보금자리를 하나 둘씩 떠나게 됩니다.


3. 난곡의 오늘- 다시 몰려드는 사람들, 그리고 내몰리는 사람들

그렇게 난곡은 개발에 개발을 거듭했고, 지난 2006년말을 기점으로 이제는 완전한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관악산이 주는 자연의 쾌적함과  체육관, 공원 등의 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난곡은  이제 서울 서남부의 대표적인 아파트단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변화된 난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해보았습니다.




전국개발지역대책연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과거  난곡에 살던 기존 주민의 재입주율은 채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입주우선권이 있어도 입주를 감당할만한 돈이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입주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형편이 그나마 괜찮아 난곡을 벗어난 분들도 있지만, 단지 재개발지역을 벗어났을 뿐 여전히 난곡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사람들도 아직 많다고 하네요. 달동네가 사라졌다고 해서 달동네 사람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긍정하고 배려하는 우리가 되길

서울시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중계동 달동네의 재개발을 잠정 보류했다고 합니다. 빈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달동네를 문화공간으로 보존해 후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라는데요. 그렇다면 그에 따른 응당의 보상이 있어야 할 터인데..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개발이든 보존이든 간에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없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삶의 새로운 터전을 얻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터전을 잃은 채로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한 때는 난초향기가 가득하기도 했고 때론 해골과 같은 재개발의 광풍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따듯한 정의 향기는 언제는 은은하게 풍겨났을 우리의 달동네 난곡, 지금 우리가 그곳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스스로의 환경을 긍정하는 마음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떤 향기를 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