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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cerism

[스크랩]소린(Sorin), 화려한 은퇴경기로 선수생활을 접다


화려했던 15년 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접은 아르헨띠나의 후안 빠블로 소린

[사진 출처 - EFE]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왼쪽 측면을 종횡무진 누볐던 아르헨띠나 출신의 한 매력적인 축구선수의 모습을 이젠 추억 속에 간직해야 할 것 같다.

 아르헨띠나가 낳은 세계적인 윙백이었던 후안 빠블로 소린(Juan Pablo Sorin)5 5천여 관중들의 축복 속에 자신의 화려했던 15년 프로축구 선수 경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소린은 4일 저녁(현지 시각) 브라질 벨로 호리존테에 위치한 미네이랑(Mineirao) 경기장에서 열린 그의 프로 생애 마지막 팀이었던 크루제이루와 1994년 최초로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캐리어를 시작한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Argentinos Juniors)와의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소린의 은퇴경기 형식으로 치러진 이 날의 친선경기는 홈 팀 크루제이루가 베르나르도(Bernardo)와 게론(Guerron)의 골을 묶어, 산띠바녜스(Santibanez) 1골을 만회한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에 2-1로 승리했다.

 이 날 운동장을 꽉 채운 5 5천여 관중들은 경기 내내 오직 한 사람, 소린의 이름을 연호했고 그가 볼을 잡으면 열렬한 환호를 보냈으며 그것은 심지어 소린이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관중들로 들어찬 미네이랑 경기장을 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며 하나의 특권입니다. 사실 나의 은퇴경기에 이토록 많은 분들께서 오실 줄은 몰랐죠. 경기가 끝나고 트랙을 돌며 관중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끝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이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이것 또한 내가 결정한 것입니다. 모두에게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합니다.

 비록 전통적으로 대표팀이건 클럽팀들이건 치열하기로 소문한 브라질과 아르헨띠나의 라이벌 의식은 최소 이 날 소린의 은퇴경기에선 많이 희석된 느낌이었다. 크루제이루 소속으로 전반전을 시작한 소린은 얼마 후 아티르손(Athirson)과 교체되어 나가자마자 이번엔 디에고 알론소(Diego Alonso)과 교체 투입되어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 선수로 뛰었다. 그 순간 그의 유니폼 상의는 아르헨띠노스의 것이었지만 하의와 양말은 크루제이루의 것을 착용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아르헨띠노스에서 교체 아웃 되더니 다시금 크루제이루 소속으로 페르난지뉴(Fernandinho)와 교체 투입되어 경기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뛰었다.

이 공식 은퇴경기에 앞서 열린 올드스타들과 유명한 라틴 아메리까 뮤지션들 그리고 소린의 친구들이 한 데 어우러져 펼친 친선경기에선 과거의 수퍼스타들이었던 라이(Rai), 소크라테스(Socrates), 프레디 링꼰(Freddy Rincon) 등이 함께 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렇게 33살의 나이로 화려했던 선수생활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게 된 소린은 이 경기에서 자신의 선수생활의 마지막 득점을 노렸으나 90분 동안 그를 상대했던 5명의 골키퍼들(크루제이루 3,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 2)은 나름 철벽방어(¿)를 선보이며, 소린의 마지막 골을 애타게 기다리던 5 5천여 관중들의 애간장을 끓였다.

 1994년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소린은 리버 플레이트(River Plate)를 거쳐 유럽의 유벤투스, 라치오, FC바르셀로나, 비야레알, 파리 생제르망, 함부르크 등 각국의 명문 클럽들을 두루 거치며 동시대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 최고의 공격형 윙백가운데 하나로 손꼽혔다.

 아르헨띠나 국가대표로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겼는데, 1995년 카타르 U-20 세계 청소년선수권 대회에 주장으로 참가해 조국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으며 A대표팀 소속으로는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의 월드컵에 참가했다.

 소스 : EFE

직접 번역 및 재구성 : 홍 승 범